權부총리 "엔캐리 청산시 제 2 환란 우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인한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사태가 발생하면서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엔캐리 자금이 일본으로 환류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될 경우 대규모 청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엔캐리 투자자금의 급격한 회수가 제2의 외환위기와 같은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지면서 시장의 불안감이 커졌다.
◇ 權부총리 "엔캐리 청산시 제2환란 우려"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란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의 통화로 조달한 자금을 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수년간 캐리 트레이더들은 다른 주요국에 비해 금리가 현격히 낮은 일본의 엔화나 스위스의 프랑 등을 빌려 미국이나 호주 등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의 통화로 표시된 주식과 채권 등 고수익 자산에 투자해 왔다.
이 중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에 힘입어 엔캐리는 국제 금융시장의 주요한 자금조달원 역할을 했고 결과적으로 글로벌 유동성 증가와 자산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실제 뉴질랜드 정부채권의 70%가 엔캐리 자금 등으로 무장한 외국인들 소유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엔캐리 자금이 단기외채 형태로 유입되면서 원화 절상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엔캐리 트레이드의 위험성을 강조해 온 권 부총리는 급기야 최근 재경부 직원게시판에 올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회의를 다녀 와서'라는 글에서는 엔캐리 트레이드 급격한 청산이 제2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며 강하게 경고했다.
권 부총리는 이 글에서 "최근 국제금융시장 불안의 기저에는 과도한 엔캐리 트레이드가 자리잡고 있다"면서 "수익률에 따라 움직이는 금융의 원리를 볼 때 일면 이해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이차거래가 과도할 경우 자금이 유입된 나라의 거시경제를 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요인이 커지는 상황에서 고수익을 노리던 엔캐리 자금이 급격하게 청산될 경우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이 작용할 수 있음을 우려한 것이다.
◇ 서브프라임 사태가 엔캐리 청산 자극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 행진이 멈춘 가운데 경기 회복에 따른 일본의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양국 간 금리격차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면서부터다.
이런 가운데 2월 말 중국 증시의 폭락은 연쇄적인 세계증시의 급락과 환율 급변동 등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졌고 이는 저금리로 자금을 빌려 고금리 시장에 투자하는 엔캐리의 청산이 전면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후 글로벌 증시가 랠리를 펼치면서 다시 리스크 선호도가 높아졌고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은 잠잠해졌지만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다시 엔캐리 청산 리스크를 자극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있지만 실제 정확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7년 4월 현재 엔캐리 자금의 규모는 약 1천700억달러로 추산됐다. 반면 LG경제연구원은 전체 엔캐리 규모와 비슷한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보이는 일본은행의 외국은행에 대한 대출 규모를 2006년 9월 말 현재 3천900억달러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엔캐리 자금의 규모도 정확한 추산이 어렵다. 산은경제연구소는 최근 2년간 국내로 유입된 엔케리 자금을 6조7천억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엔화가 다른 나라의 통화로 바뀐 뒤 유입된 것을 고려하면 그 규모는 급격히 증가할 수도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3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엔캐리 규모는 캐리 트레이드 추정기관마다 차이가 커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단지 이런저런 방법으로 나름대로 정책당국에서 추정해보면 생각보다 그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엔캐리 청산시 우리경제 큰 충격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엔캐리가 청산된다면 무엇보다도 각국의 주가 급락과 환율 변동을 비롯해 국제 금융시장의 충격이 초래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권 부총리는 1980년대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 노르딕 3국의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급등한 현상이나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발생 등의 이면에는 일본계 자금의 급속한 유출입이라는 원인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1998년 당시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과 미국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탈매지니먼트(LTCM)의 파산 이후 엔캐리 투자자들이 자금을 환수하면서 엔화는 단 열흘 만에 17% 이상 절상되며 국제외환시장을 혼란에 빠뜨린적도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시 우리 경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효과는 부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엇갈릴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우리 경제가 일본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입한 금액은 45억달러 수준으로 태국, 중국, 대만 등 기타 아시아 국가에 비해 규모 자체가 매우 큰 편이다. 특히 최근 3년간 단기외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일시적 충격에 의한 단기자본유출 혹은 일본의 금리 인상에 노출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실물경제에서는 세계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둔화 효과도 있지만 그동안 계속돼왔던 원화 강세 요인이 해소되면서 수출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엔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환율 측면에서는 그동안의 원화 강세가 해소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해외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갈 경우 자산가격이나 거시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경부는 다만 권 부총리의 발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해 캐리 트레이드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사전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뿐 실제 엔캐리 트레이드의 대규모 청산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2000년대 엔캐리 자금규모가 급증한 데는 초저금리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역할이 컸다"며 "일본의 금리 인상에도 주요국과의 금리차가 여전히 커 엔캐리의 캐리 트레이드 급격한 청산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캐리 트레이드
금융위기 이후 美 초저금리 틈타
값싼 달러로 신흥국 투자 호황
터키ㆍ브라질ㆍ중국 등 투자금 썰물
캐리 트레이드 영향권 한국도 불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미국의 초저금리 시대는 세계적인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의 전성기였다. 선진국에서 빌린 싼 자금이 신흥국의 고수익 상품에 몰려들면서 각국의 주식, 채권, 상품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출구전략과 세계적인 불경기가 겹치면서 이런 캐리 트레이드 유행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터키, 브라질, 중국 등 대표적 신흥국에서 잇따라 예전과는 다른 이상신호가 감지되면서 한국 시장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신흥국 채권의 매력이 감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원자재 시장의 슈퍼 사이클(강세 시기)과 미국의 양적완화가 끝난데다, 경기하락에 위기감을 느낀 신흥국들이 금리까지 다투어 내리면서 통화가치마저 떨어져 갈수록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미국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ㆍ채권 순매수 규모(-169억달러)는 2008년(-742억달러)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해외 주식과 채권에서 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상 징후의 대표 사례는 터키다. 에너지 수입비중이 높은 터키는 작년만 해도 국제유가 하락의 1등 수혜국으로 주목 받으며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몰렸다. 터키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작년 9월 9.8%에서 지난달 6.8%까지 하락(국채가격 상승)했다.
하지만 각국의 경쟁적인 통화완화 바람 속에 터키 정부가 중앙은행에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가하자 다시 투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터키 리라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이달 들어 2.28리라에서 2.48리라로 상승(가치 하락)했고,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7.8%까지 되올랐다.
캐리 트레이드의 단골 투자국이었던 브라질도 심상치 않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국영 석유회사(페트로브라스)의 비리 스캔들 등으로 브라질 헤알화 환율은 최근 달러당 2.84헤알까지 치솟아 2004년 이후 최고치(헤알화 가치 급락)를 기록 중이다.
FT는 중국에서도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국제수지 중 자본 유출입을 반영하는 자본계정에서는 작년 4분기 사상 최대인 910억달러(약 99조2,080억원)가 순유출됐다. 작년 2분기부터 시작된 순유출 현상은 3분기 567억달러에 이어 점점 규모를 키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외채 형태로 중국에 들어온 외화가 급격히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중국 당국이 빠져나가는 자금을 메우고자 돈 풀기에 나설 경우, 위안화 가치가 더욱 떨어져 최대 교역국인 한국에도 큰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돈풀기를 진행중인 일본의 엔화나, 대규모 양적완화를 발표한 유로존의 유로화가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빈 공간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예전처럼 고수익을 보장하는 시장이 많지 않아 아직은 뚜렷한 캐리 트레이드의 차기 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 상태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 금리인상이 임박해지면 우리나라에서도 자금 이탈이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전문 용어로 캐리(carry)는 자산을 보유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말한다.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했다면 대출 이자가 이에 해당된다.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서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하면 이것은 캐리 트레이드(trade)가 된다.
평소에 이런 트레이드로 돈벌이가 잘 안 되는 이유는 투자 기간 중 두 나라 사이의 환율 변동이 금리의 차이를 적절히 상쇄시키기 때문이다.캐리 트레이드
그러나 저금리 통화가 갑자기 평가절상되거나(빌린 돈을 그 통화로 갚아야 하는데) 또는 고금리 통화의 환율이 너무 평가절하되는(투자 원리금의 가치가 줄어드니까) 걱정을 안 해도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본 엔화의 환율은 대지진 직후 반짝 강세를 보였지만 곧 주요 7개국(G7)의 시장개입 결정으로 안정된 이후 다시 80엔 이하로 내려갈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거기에다 일본의 제로금리도 당분간 변동되지 않는다고 보면 엔화로 조달하여 세계 도처에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의 장이 활짝 열리게 된다.
이것은 또한 시기적으로 절묘하다. 미국의 양적 완화(QE2)가 6월로 끝나가는 데다가 유럽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세계에 풀린 유동성이 회수되려는 시점이었다.
이에 따른 유동성의 감소는 엔 캐리 트레이드에 따른 새로운 유동성 증가로 상당히 상쇄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만 해도 엔 캐리 트레이드의 잔액이 약 1조달러에 달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부터 이 조짐이 보이고 있다. G7 공조가 발표된 3월17일 이후 증권거래소 총 거래일 20일 중 19일 간에 걸쳐 외국인 순매수가 이어졌다. 주가지수는 같은 기간 8.5% 급등했다.
캐리 트레이드의 위험은 그것이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양적 완화에 이은 캐리 트레이드
캐리 트레이드를 하려면 빌린 통화를 매각하여 운영하려는 통화를 매입해야 하는데 이는 빌린 통화의 평가절상을 억제하고 운영하려는 통화의 평가절하를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캐리 트레이드가 캐리 트레이드의 조건을 재생산해내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든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시작될 때는 반대 방향의 피드백 루프가 형성되어 자금이탈과 환율 폭락이 가속된다. 그래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전형적인 핫머니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금리 차이를 노린 외국인 자금의 유입으로 한동안 절상되어 오던 브라질과 호주의 통화가 최근에 그 절상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브라질은 물가상승률(6%)을 보나 경상수지(3년 연속적자)를 보나 통화가치가 올라갈 이유가 따로 없는데도 달러 대비 1달러=2헤알(real)이 깨진 후 1달러=1.5헤알을 기록하고 있고 전통적으로 미 달러에 비해 약세 통화인 호주 달러 역시 작년 10월 처음으로 미 달러와 등가를 이루더니 최근에 미 달러를 앞질렀다. 우리나라 원화도 비슷한 모양의 강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자본시장을 아예 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이 매매할 수 있는 주식("B" share)은 중국 위안화가 아닌 외화로 거래되며 국내 채권시장도 8개 외국 중앙은행에게만 극히 제한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최근 IMF의 스트로스칸 총재는 무질서한 국제자본이동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IMF가 핫머니의 폐단을 인정한 듯 반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 내용을 보면 핫머니 방출국에 대한 규제보다는 핫머니를 차단하려는 국가들에 대한 규제 성격이 짙다. 핫머니가 들어 오지 않도록 환율(평가절상)캐리 트레이드 과 이자율(인하)을 사전적으로 관리할 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IMF의 움직임은 브라질이 외국인에게 부과하는 6%의 금융거래세 시비를 가리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어 보인다. 이래저래 핫머니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이 어려워진다.
빈약한 핫머니 대응수단
그런 가운데 혹시 정책당국이 원화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우려하여 외환시장에 개입하려 한다면 이것은 잘못이다. 환율의 향방이 평가절상 쪽으로 미리 읽히고 있는 한 '스무딩오퍼레이션'은 캐리 트레이더들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할 뿐이다.
오늘 중국 하이난 섬에서 개최되는 제3차년도 BRICS 정상회담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외에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처음으로 참석한다. 이들은 이 핫머니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재개 가능성 높아져
지난 3월11일 일본 대지진 이후,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위해 해외 자산을 매각해 일본에 송금할 것이라는 기대가 부각되면서 달러-엔 환율이 76.59엔까지 하락하자, 지난 3월18일 일본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정부가 외환시장에 함께 개입하며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특히 G7의 개입 이후 2000년대 중반처럼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가 재개되리라는 예상이 부각되면서 한국 원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등 이른바 ‘고금리 통화’의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무엇이며, 이것이 본격화할 때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살펴보자.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적 저성장 영역에 접어들기 전까지 엔화 가치는 선진국 경기 여건에 좌우됐다. 미국 경제 여건이 개선될 때는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반대로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악화돼 일본 수출기업들의 전망이 나빠지면 엔화가 강세를 보였던 것이다. 일본 경제성장의 주요 엔진이 ‘수출’에 있었기에, 선진국 경기가 개선될 때는 일본의 수출산업이 호황을 누리며 경상수지 개선은 물론 일본 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 수요를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관계는 2004년을 전후해 자취를 감추었다. 2004∼2007년 미국 경제가 호조를 보일 때 엔화가 약세를 보인 반면, 2008년부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자 오히려 엔화 강세가 나타났다. 이런 기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엔 캐리 트레이드 때문이다.
여기서 ‘캐리 트레이드’란 저금리로 자금을 차입해 수익률이 높은 유가증권이나 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뜻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는 오랫동안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한 일본에서 엔화로 자금을 차입한 것을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비롯해 수익률이 더 높은 자산에 투자하는 것이다. 항상 엔 캐리 트레이드가 발생하지는 않으며,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려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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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자본을 조달하는 국가의 금리가 낮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하던 2000년대 중반, 일본은 디플레이션을 캐리 트레이드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제로금리’ 정책을 사용해 일본의 시장금리는 1%를 밑돌았다. 둘째, 해외로 자금을 공급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유동성이 필요하다. 일본은 당시 미국 뒤를 잇는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자랑했고, 오랫동안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풍부해 전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셋째,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값싼 자본을 조달해도 투자 심리가 얼어붙어 마땅히 투자할 만한 곳이 없다면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은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중국 제품이 전세계에 공급되고, 부동산 경기 활황으로 미국이 충분한 소비에 나서며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완화되면서 주식시장의 강세가 이어졌고, 안정적이면서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채권이 곳곳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달통화(엔) 약세가 지속돼야 한다. 차입 자본을 상환할 시점이 되었을 때, 차입한 통화의 가치가 오르면 금리 차이로 번 일부 수익을 반납해야 하므로 캐리 트레이드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반감된다.
중동 정세, 국제 유가 등은 위험 요소로 남아
네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면 위험을 거의 짊어지지 않고도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돼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해진다. 그러면 엔화 약세가 본격화되고, 반대로 한국 원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처럼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고금리 통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예전처럼 시장의 ‘주류’를 형성할 수 있을까? 엔 캐리 트레이드는 완만한 증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우선 디플레이션 상태가 계속되는 일본의 상황을 미뤄볼 때, 일본은 상당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다. 유동성 여건도 우호적이다. 일본 은행이 대지진 이후 시장에 공급한 유동성 규모는 약 100조엔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추가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며 공급한 6천억달러를 캐리 트레이드 뛰어넘는 엄청난 규모다. 더 나아가 글로벌 경제 여건 개선 속에 선진국 채권 금리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캐리 트레이드에 따른 차익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G7의 공조 개입 이후,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가 점차 부각되고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가로막을 요인도 적잖다. 무엇보다 중동 지역의 정치적 긴장감이 높아지며 국제 유가가 급등할 경우 엔 캐리 트레이드가 오히려 청산될 수 있다. 국제 유가 급등은 선진국 소비자의 지출을 억제하고, 이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자의 선호를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등 일부 남유럽 국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엔 캐리 트레이드를 가로막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남유럽 국가의 채권으로 민간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는다면, 엔 캐리 트레이드 같은 위험한 거래를 재개할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이상의 요인을 종합해보면,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엔 캐리 트레이드 재개 기대만으로도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은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점차 캐리 트레이드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투자가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G7 공조 개입 이후 엔 캐리 트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이 부각된 뒤, 한국 원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달러화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한 것이 단적인 예가 된다. 따라서 한국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엔 캐리 트레이드의 재개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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